245화

245화 [성좌, ‘구원의 마왕’이 화신 ‘유중혁’에게 100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장내에 울려 퍼지는 시스템 메시지에, 모든 성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누가 보아도 불리한 싸움에 돈을 건다는 것. 아무래도 내 행위는 몇몇 성좌들의 흥미를 산 모양이었다. [성좌, ‘목요일의 천둥’이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성좌, ‘새벽 별의 여신’이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극소수의 성좌들일 뿐. 대부분의 성좌들은, 그저 달아오른 도박판의 열기에 휩쓸릴 뿐이었다. [하하핫! 미친놈이군! 그렇다면 나도 50만 코인을 걸겠다!] 처음부터 빙화신녀의 편을 들었던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구경만 하던 다른 성좌들도 하나둘 참전하기 시작했다. [성좌, ‘고요한 섬의 미식가’가 화신 ‘제갈령령’에게 2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성좌, ‘하얀 성의 주인’이 화신 ‘제갈령령’에게 3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 메시지들은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대부분은 빙화신녀 제갈령령에게 코인을 거는 메시지들. 유중혁 쪽에 코인을 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화신 ‘유중혁’에게 30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응? 반사적으로 페르세포네를 돌아보자,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조금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무엇이 괜찮으냐 묻는 건가요?] 돌아온 반문에 할 말이 없어진 것은 나였다. 하긴, 페르세포네 쯤 되면 30만 코인 정도 거는 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날 대신해 참견한 이가 있었다. [험, 할망구. 그렇게 비자금 막 걸어대면 하데스가 잔소리 안 하는가?] [저는 할머니가 아니니까 ‘양산형 제작자’께서는 말을 삼가시죠.] [큼, 그만큼 나이 처먹었으면 할망구지 뭘······.] [타르타로스에 처박히기 싫으면 입 조심을······ 잠깐만, 설마 당신도 걸었나요?] 페르세포네의 물음에 ‘양산형 제작자’가 히죽 웃었다. [성좌, ‘양산형 제작자’가 화신 ‘유중혁’에게 15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양산형 제작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난 이번달 ‘도깨비 보따리’ 정산금이 신통치 않아서 많이 걸진 못하네.] 실제로 그는 정확히 내가 산 [에오렌의 검] 만큼의 가격을 걸었다. 아마 수수료를 빼면 저 정도 순이익이 남았을 테니까. 어쨌거나, 한두 푼이라도 이쪽에 걸어줬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택에, 더욱 흥분한 성좌들이 마구 코인을 걸어대고 있었다. [성좌, ‘환희와 축제의 여신’이 화신 ‘제갈령령’에게 5만 코인을 걸었습니다.] 내기에 걸린 코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600만 코인을 돌파했다. 그쯤 되자 ‘미식협’의 어떤 성좌들이라도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여! 빨리 죽여버리라고!] [코인 뺏기면 죽여버린다!] 투기장에 온 인간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들······. 그만한 ‘이야기’를 겪었음에도 이런 일에 흥분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양산형 제작자’가 웃었다. [그만한 ‘이야기’들을 겪었으니 이런 ‘이야기’에 더욱 굶주리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인간이든 성좌든, 이야기 앞에서는 모두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그런데, 승산은 있는 건가?] [혹시 불안해지셨습니까?] [크험,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승산이 없으면 만들어야죠.] 정확히 말하면, 이건 배수의 진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여기서 유중혁이 죽는다면, 이번 회차는 망하게 된다. 어차피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제대로 결착을 보는 편이 낫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합니다!]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상과 연결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어쭈, 유중혁······ 여전히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하지만 방법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 [바앗.] 기다렸다는 듯, 비유가 손을 움직여 내 눈앞에 개인 패널을 띄워 주었다. 곧이어 화면이 펼쳐졌다. ―크라라라라라라라! 괴상쩍은 울음을 토해내는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끔찍한 독무(毒霧)를 뿜어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살포된 연기에 닿은 무림인들이 통째로 산화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강림 상태로 보아, ‘성급한 늪의 포식자’는 대충 삼분의 일을 상회하는 수준의 ‘격’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말이 삼분의 일이지, 대회장을 초토화시키기고도 충분히 남는 수준이었다. 주변 성좌들이 개연성을 지원해준 것도 컸다. 드드드드드드! 괴룡의 발길질에 대회장의 지반이 모두 갈려 나갔다. 무지막지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피스랜드]때나 [암흑성]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때는 무려 ‘이계의 신격’이 강림 했었으니까. 그러나, [피스랜드]나 [암흑성]때보다 상황이 낫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스랜드] 때는 ‘역설의 백청’ 키리오스가 있었고. [암흑성] 때는 ‘고려제일검’ 척준경이 있었다. ······지금은 누가 있냐고? [성좌, ‘구원의 마왕’이 화신 ‘유중혁’을 바라봅니다.] 내 메시지에 유중혁이 귀찮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김독자. 일은 끝났나?” [성좌, ‘구원의 마왕’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순간, 유중혁의 눈동자에 의심의 그림자가 스쳤다. ‘성급한 늪의 포식자’를 노려보던 유중혁이 물었다. “혹시······ 네놈 때문에 저런 게 나타난 건가?” 눈치 빠른 자식. “······김독자!” 그야말로 엄청난 분노였다. 나는 사과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화신 ‘유중혁’에게 100코인을 후원하였습니다.] “필요 없다!” 콰콰콰콰콰콰! 그리고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움직였다. 행성의 모든 늪지대를 관할하는 태고의 도마뱀. 그 도마뱀의 등허리에는, 한때 빙화신녀였던 존재의 머리가 불쑥 솟아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신체를 빼앗긴 화신의 끔찍한 비명. 그 비명을 전주 삼아 달려온 도마뱀이 유중혁을 향해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츠츠츠츳! 도마뱀의 꼬리에 스친 것만으로도, 유중혁의 몸을 감싸던 호신강기가 큰 타격을 입었다. “큭······.” 아직 유중혁은 초월형 2단계에 오르지 못한 듯했다. 하긴, 아무리 유중혁이라도 2주만에 초월형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건 무리였겠지. 1단계 상태로 빙화신녀를 저렇게 몰아붙인 것만도 악마의 재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많지 않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빙의를 요청합니다.] 유중혁은 이미 몇 번이나 ‘전지적 독자 시점’을 겪어 봤으니,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을 것이다. 그런데, 유중혁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싫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이대로 가면 모두 죽는다고 말합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중혁에게 강림해 [전인화]를 사용한다고 해도, 저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지난 번처럼 [제4의 벽]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정신계 스킬을 사용하는 성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쿠오오오오오! 유중혁이 재빠른 발놀림으로 공격을 피해 나가자, 열 받은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다시 한 번 독무를 준비했다. 입가에서 터지는 스파크의 수위로 봐서,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공격이 밀어닥칠 듯했다. 나는 유중혁을 재촉했으나, 유중혁은 요지부동이었다. “가서 네가 할 일이나 해라, 김독자.” 예상 밖의 사태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이 자식이 오늘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나는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된 거, 무도 대회가 망하더라도 다른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자리에, 우릴 도와줄 강자는 하나 뿐이다. 파천검성 남궁민영. 그녀는 키리오스나 척준경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자니까, 저 괴물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객석에 앉아 만두를 먹고 있는 파천검성을 발견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내 메시지에도, 파천검성은 부지런히 만두만 씹을 뿐이었다. 가끔 곁에 다리를 모으고 앉은 파천신군의 입에 만두를 넣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바로 아래 객석에서는, 장하영과 한명오도 나란히 앉아 구역꾸역 만두를 처먹고 있었다. ······아니 이 인간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안달난 나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유중혁이 반응한 것은 그때였다. “······신유승. 듣고 있나?” 그 말과 함께, 비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앗?] “김독자의 화면을 꺼라.” 비유가 곤란하다는 듯 유중혁을 마주보았다. 신유승의 기억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 둘은 꽤나 복잡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환생 전의 이야기고,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내 도깨비가 된 비유가 유중혁 녀석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이거야. 그런데, 내 어깨에 올라타 있던 비유가 갑자기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바앗, 바아앗······.] “······비유?” [바아앗······, 쿠······쿠울······.] 터무니없는 연기와 함께, 비유가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개인 패널 화면이 꺼지고 유중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비유가 왜? ‘멸살법’의 수정본에도 이런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우와아아아아아! 불현듯 터져 나온 함성에, 나는 무대 쪽에 설치된 패널로 시선을 돌렸다. [저것은······?] 놀란 성좌들이 하나 둘 몸을 띄워 패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새 페르세포네와 ‘양산형 제작자’도 패널을 향해 바짝 다가가 있었다. 백여 명에 달하는 성좌들이 동시에 패널 앞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화면은 완전히 가려지고 말았다. [아니, 잠깐만! 좀 비켜봐요!]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성좌들의 결집이 너무나 단단했다.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화면이 번쩍이며 내려치는 천둥 소리뿐. 콰르르르릉! 하지만, 소리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파천검뢰(破天劍雷). 내가 훔쳐 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검의 뇌격이었다. ―갸아아아아아악! 엄청난 타격을 입은 듯, ‘성급한 늪의 포식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저만한 수준의 무공이라면 보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다행히 파천검성이 나섰구나.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파천검성이 나섰으니, 유중혁은 무사할 것이다. 덕택에 대회는 무산되겠지만······ 유중혁이 죽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나은 결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오, 파천검성의 제자! ―파천검희(破天劍嬉)다! ······파천검희? [화신의 무공이라고 얕볼 것이 아니었군.] [허, 어떻게 저런······ 고작 초월좌의 힘으로······?] [하하핫, 재미있는 능력이군. 혹시 <아스가르드>의 그놈이 벌인 짓인가?] [내 취향은 아니군요.] 알 수 없는 진언들이 홀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경악합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한 성좌가 즐거움에 몸부림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분통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채널에서도, 연회 홀에서도. 범람하는 메시지 속에 나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내 코인! 안 된다! 내 코인······!] [으아아아아아아!] 아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나는 숨을 힘껏 들이켠 뒤, ‘격’까지 발동해서 성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간신히 패널의 앞까지 도달했을 때, 화면에서 다시 한 번 엄청난 뇌격이 내리쳤다. 꽈르르르릉! 강력한 뇌전에 화면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빛은 천천히 사그라들었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까맣게 타버린 잿빛의 가루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그 눈을 맞으며, 한 사내가 고고히 서 있었다.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치켜든 유중혁의 모습이었다. 녀석의 발 아래에, 뇌전에 새카맣게 타버린 거대한 도마뱀이 축 늘어져 있었다. 도마뱀의 시체를 밟고 대회장의 한쪽 구석으로 다가간 유중혁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그곳에 꽂힌 흑색 패도를 뽑아들었다. ―이 대회에 2등은 없다. [흑천마도]였다. ―그러니, 이건 내 것이다. 뒤늦게,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도 대회 우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상황은 명백했다. 파천검성이 아니라······ 유중혁이 해치웠다고? ―우승자는 파천검희 유중혁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파천검희가 대체 뭔······? 내 의문은 길지 않았다. 귓가에 시스템 메시지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서브 시나리오― ‘미식협의 내기’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기에서 승리했습니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설화, ‘기적의 도박사’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동전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서브 시나리오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코인 현황을 확인했다. 마치 그 숫자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것처럼, 삐걱거리며 올라가는 숫자들. [보유 코인 : 1,986,725 C] ······. [보유 코인 : 2,790,876 C] ······. [보유 코인 : 3,890,875 C] 성좌들이 내건 눈먼 코인들이, 내 잔고 위로 폭설처럼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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