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198화
돌아보자, 선술집의 주인장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어제 막 들어왔거든.”
“잘 왔네. 우리 [공단]은 살기는 팍팍해도 인심은 좋은 편이지.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착해서 살아도 나쁘지 않은 곳이야. 한 잔 하겠나?”
“아니,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흘흘, 마계가 술맛을 모르고서 버틸만한 곳은 아닌데. 불행한 친구구만.”
그 소릴 듣고 있자니 문득 ‘미노 소프트’에 처음 입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나갔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못 마신다고 이야기했더니 한명오 부장이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
그러고 보니 지금쯤 한명오는 어떻게 됐으려나.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저주를 받은 뒤에는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게 되었으니······.
피곤한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어쩐지 출출한 기분이 되었다.
“술은 안 마셔도 안주는 좋아해. 안주만 시켜도 되겠나?”
“물론이지. 죽음의 악마 발톱 튀김, 파멸 산장의 악마 곱창 볶음, 그리고······.”
나는 쓰게 웃었다.
“초행길이라고 놀리는 건 그만 두는 게 좋아.”
“하하, 들켰군.”
“제일 잘하는 걸로 줘. 얼마지?”
“5코인만 내게.”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었다.
[피스 랜드]의 작은 성좌도 먹을 수 있는 가격이로군.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물었다.
“두 배를 내면 두 배로 맛있게 해줄 수 있나?”
“하하, 세 배도 가능하지.”
내가 말없이 50코인을 내자, 주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열 배는 조금 힘들 것 같긴 한데, 노력해 보겠네.”
말하는 것과는 달리 제법 그럴듯한 냄새가 풍기는 걸로 봐서 주인장은 꽤 솜씨 있는 요리사인 듯했다. 나는 간만에 허기를 달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기대에 부풀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것이 언제적 일이었는지 벌써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나는 꺼진 배를 잠시 달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 왔으니, 잠깐 휴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대단하군. 저기가 ‘지구’라는 곳인가?”
사이좋게 모인 화신들이 선술집 상단에 매달린 패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도깨비들의 [채널]을 녹화한 영상이었다.
어쩐지 익숙한 광경이다 싶더니,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상영되는 장면은 ‘서울 돔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10번째 시나리오인 ‘73번째 마왕’을 담은 기록.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신유승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쓰려왔다.
나는 코트의 깃을 세워 반쯤 얼굴을 가린 채 그 영상을 보았다.
“시나리오 임팩트 한 번 굉장하구만. 소문대론데?”
“저기가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시나리오 지역이라며?”
“저 동네 화신 녀석들, 아주 살판 났겠구만!”
[마계]의 거의 모든 매스 미디어는 혹부리들의 통제하에 있다.
혹부리들은 도깨비들처럼 직접 채널을 열 수 없기에 후원금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없다. 대신 녀석들은 녹화 자료를 훔쳐 마계 곳곳에 뿌리는 등의 일을 하며 수입을 챙긴다.
“시벌, 난이도 보니 좆도 아닌 거 같구만.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
“헛소리 말게. 자네는 저기 갔으면 다섯 번째 시나리오도 못 깨고 뒈졌어.”
“어허, 아니라니까?”
툴툴대며 화면을 보던 이들은, ‘73번째 마왕’ 시나리오가 후반부로 치달으며 점차 표정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우리엘, 아시잖아요. 이건 그런 ‘이야기’일 뿐입니다.
내 대사가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정말로 이상했다.
―누군가 죽는 건, 그동안 많이 봐왔지 않습니까.
저때 우리엘이 많이 슬퍼했었지······.
고개를 돌려 보니, 몇몇 화신들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분노하거나, 절망하거나, 탄식하는 목소리.
“시발, 너무 슬프잖아······.”
······낯선 기분이었다.
자신들의 시나리오가 아님에도, 내가 겪었던 이야기에 동조해주는 화신들의 모습. 마치 위로라도 받은 듯한 얼굴들.
어쩌면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성좌들만이 아니다.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고향 시나리오로 돌아가면 저 정도 할 수 있으려나?”
“램퍼트, 돌아가고 싶은가?”
“갈 수만 있다면 못 갈 것도 없지.”
“클클, 그럼 혹부리한테 부탁해 보게. 언제든 보내줄 테니.”
“······그걸 농담이라고 하나? 난 고향의 ‘재앙’이 되고 싶지는 않아.”
재앙.
그 말에 일순 선술집 안의 공기가 경직되었다.
하지만 정말 잠깐이었다.
모두가 꺼리는 화제는, 금방 전환되기 마련이니까.
“여기 있네. 열 배 맛있는 안주.”
나는 옅게 미소하며 안주를 받아 들었다.
안주는 새하얀 튀김옷을 입은 튀김들과 간단한 면 요리였다.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맛보지 않아도 훌륭한 요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접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패널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작은 머리통 하나가 보였다.
내가 곁에 다가온 줄도 모르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얼굴.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녀석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보고 있으니 그립냐?”
“히익!”
작게 놀라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정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나려는 장하영의 어깨를, 나는 지그시 눌렀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 그냥 밥이나 같이 먹자는 것뿐이니까.”
장하영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니, 순순히 옆자리에 다시 앉았다. 주변에는 다른 화신들도 많고 하니 자길 해칠 일은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우물쭈물하던 장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일렌이랑 얘기는 끝났어?”
“그래.”
“뭔 얘기 했는데?”
“넌 알 거 없어.”
“······근데 그거 스페셜 요린데.”
“먹고 싶으면 먹어.”
내 말에 장하영이 기다렸다는 듯 포크를 휘둘렀다. 한가득 쌓여 있던 면발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장하영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의 스킬 중에는 [뻔뻔함]도 있다.
“뭐, 먹어줄 만하네.”
장하영은 순식간에 내 음식을 절반 이상 먹어 치웠다.
“······근데 너도 지구 출신이지?”
“그래.”
화면에는 내 얼굴이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누가 고의로 화면을 만진 것인지, 내 얼굴은 한 대 맞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비형 자식, 내 얼굴만 왜 저 따위로 편집해 놓은 거야?
어쨌든 그 덕에 장하영이 내 본모습을 알아볼 일은 없을 듯했다.
“······어땠어?”
“끔찍했지.”
그 말만으로도, 장하영은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를 겪은 이들에게 비극의 수사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혹시 너도 지금 화면에 나와?”
“나와.”
“어디?”
“지금 나오네.”
마침 잘생긴 유중혁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운 좋게 내가 입고 있던 코트도 적당히 더럽혀져서 녀석의 검정색 코트와 흡사해 보였다.
적당히 우기면 정말 믿을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장하영의 표정은 영 신통찮았다.
“전혀 안 닮았는데······.”
“나 맞아.”
“아냐. 네가 아무나 빚다가 뭉갠 도자기 반죽 같다면, 저쪽은 신의 손길로 천일 동안······.”
“나 추방자잖아. 얼굴 쪽 설화가 무너져서 그래.”
“아무리 설화가 무너져도 그건 좀······ 거짓말도 말이 되는 걸 해야지.”
······젠장.
내 기분이야 그렇다 쳐도 목적은 달성해야 하니까.
“그래, 나 아냐. 그래도 쟤 멋있게 생겼지?”
“제법.”
“싸움도 엄청 잘해.”
“그래?”
“지구에 가면 만나게 해줄게. 나 쟤랑 꽤 친하거든.”
그 말에 장하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마 장하영은 넘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멸살법’에서 장하영은 유중혁을 동경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니까.
이참에 미리 이 녀석을 설득해서 귀환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 두면······.
“내가 왜 쟤를 만나야 하는데?”
“어? 아니 그냥······.”
“오히려 저쪽에 더 흥미가 있는데.”
“누구?”
“저기 저쪽.”
화면 속에, 새카만 마기에 둘러싸인 인형이 보였다.
슬픈 눈으로 자신의 일행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잘 알 수 있었다.
그건 나였다.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는 장하영을 보며, 나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쟨 얼굴도 잘 안 보이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당황한 내가 말을 주워섬기는데, 선술집 곳곳에서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와아아아!”
“안돼! 눈을 떠 구원의 마왕!”
“젠장! 눈물이 멈추지 않아!”
[73번째 마계에서 당신의 유명세가 강화됩니다.]
[1,5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았나?
갑자기 유중혁 코스프레를 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사실 저게 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시 만나자, 유중혁.
마침내 시나리오가 종막에 다다르면서, 사람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장하영이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미 여자친구 있을라나.”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뭐? 누구?”
“구원의 마왕. 혹시 저 사람이랑도 아는 사이야?”
“아는 사이긴 한데······.”
나는 장하영의 아름다운 눈망울을 마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새하얀 뺨에 투명한 눈망울.
미색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얼굴이다. 하지만······.
“너 남자 아냐?”
내 기억이 맞다면, 장하영은 남자다.
왜냐하면 빌어먹을 ‘멸살법’ 작가 놈이 내 모든 댓글을 다 수용해 놓고, 딱 한 가지만 지 맘대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 녀석의 성별이다.
장하영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든 겉만 보고 판단하려는 게 지구인 답네.”
뭔가 대꾸하려는 순간, 선술집의 주인장이 갑자기 불을 껐다.
그러더니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술집 전체를 향해 말했다.
“밤이 온다.”
그리고 그 작은 한 마디에, 주인장을 중심으로 선술집 내부에 깊은 적막이 번져 갔다. 일전에 ‘재앙’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보다도 훨씬 민감하고 예리한 적막. 눈이 마주친 장하영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자세히 보니 이 선술집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의 다른 술집들과 가게들도 문을 닫고 불을 끄는 것이 보였다. 삽시간에 소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공단] 전체가 심해에 잠기는 듯한 광경.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서 음산한 피리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몇몇 공민들이 귀를 막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도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마계에는 특수한 [밤]이 찾아온다.」
[제4의 벽]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멸살법’의 설정을 떠올렸다.
「[공단]의 모든 공민들은 귀족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단순히 귀족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흘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밤] 때문이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이 쩌저저적, 얼어붙는 소리가 들리며 거리로 뭔가가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스으으으으.
숨을 죽인 공민들은 마치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아예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숙인 이들도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거대한 낫의 그림자.
「밤이 되면, 공단에는 [처형관]이 나타난다.」
「공민들에게 [혁명가]가 있다면, 귀족들에게는 [처형관]이 있다.」
공민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귀족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근원이자, 공작이 이 공단에서 무소불위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저 [처형관]의 존재 때문이었다.
끼기기기기긱.
선술집의 문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 깊은 어둠 속에서 유리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혁 명 가 가 누 구 냐.]
성인 남성의 두 배 정도 되어 보이는 몸집에 사신을 연상시키는 외양.
뒤집어쓴 검은 케이프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겉으로 풍기는 섬뜩한 기운만으로도 놈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대상은 현재 시나리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대상은 현재 무적 상태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밤의 [공단] 안에서는 저 [처형관]과 대적할 수 없다.
내게 음식을 내주었던 주인장도, 시나리오를 보며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사람들도 모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처형관]은 이 선술집을 자신의 처형장으로 택했다.
이곳의 누군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는다.
[혁 명 가 가 누 구 냐.]
처형관의 낫이 곁을 스칠 때마다 사람들이 몸을 웅크렸다. 마치 놀이라도 하는 듯한 광경. 내가 놈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자, 장하영이 깜짝 놀라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눈 마주치지 마.”
그 작은 소리에, [처형관]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런 시······.”
정확히는, 욕설을 뱉는 장하영 쪽을.
서서히 다가오는 [처형관]을 보며, 장하영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는 얼굴.
나는 완전히 겁에 질린 장하영의 머리를 턱 짚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깜짝 놀라 입을 뻐끔거리는 장하영을 내버려 두고 고개를 들자, [처형관]이 불길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김독자는 생각했다. 유중혁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녀석이었다면, 절대 여기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겠지.
유중혁은 끝까지 자신을 숨겨서 최대한 이득을 볼 상황을 찾았을 것이다.
[공단]의 시나리오에 참가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조사를 끝냈을 것이고, [혁명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홀로 고심했겠지.
「김독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 녀석이 회귀를 수백 번이나 한 것이다.」
스르르 낫을 움켜쥔 [처형관]이, 나를 향해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냈다.
[너 는 누 구 냐.]
선술집의 모두가 나를 주목한 그 순간, 나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혁명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