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145화
서울 상공에 세 번째와 두 번째 랭킹이 발표된 순간, 화신들은 패닉에 빠졌다.
“씨발! 이게 뭐야!”
“그럼 최강은 누군데?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화신들은 당연히 유중혁과 니르바나둘 중 하나가 최강의 화신이고, 이곳에서 둘 모두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1등이 가려진 순간 전력을 다해 그를 해치우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려 했던 화신들은 난데없는 반전에 허둥지둥거리기 바빴다.
그아아아아!
설상가상으로 5급 괴수종 한 마리가 방어진을 꿰뚫고 난입했다. 방심하고 있던 화신들이 괴수의 이빨에 그대로 뜯겨 나갔다.
“으아아악!”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밀려오는 5급 괴수종들의 숫자는 만만치 않았고, 화신들은 생각보다 단합력이 좋지 않았다.
[ * 현재 화신 숫자 : 89041 ]
그새 또 수천 명의 화신이 죽어 나갔다.
콰지지지직!
뒤따라 난입한 이현성이 [태산 부수기]로 재앙의 머리를 으깼다.
“군인 아저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지혜와 정희원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각자 방어선을 맡아 괴수들을 해치우던 중이었다.
“니르바나가 최강이 아니라면 독자 아저씨 예상이 빗나간 거잖아요? 이제 우리 어떡해요?”
일행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니르바나가 최강의 화신일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니르바나를 죽여도 시나리오가 끝나지 않는다. 이현성은 멍한 얼굴로 스타디움을 바라보았다.
“제 생각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현성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
“크아아악!”
니르바나의 몸이 비명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내게 죽음을 알려 주겠다고? 웃기지 마라!”
무기력하게 얻어 맞으면서도, 니르바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도, 진정한 죽음은 맞을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저렇듯 다양한 감정을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구원교를 전파하는 목적일 것이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은 채 말했다.
“사실은 죽고 싶구나. 그렇지?”
“······!”
“자신이 죽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죽음을 보며 위안을 삼는 거야.”
모든 인간은 단 한 번 죽기에, 그 한 번의 생에 절실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너는 인간에게 구원교를 전파한 거야. 그들이 ‘단 한 번 뿐인 삶’을 살아가는 걸 보면서, 너 역시 그들의 삶에 녹아들고 싶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너도 ‘하나’가 되어 공유하고 싶어서.”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나는 니르바나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이기에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존재를 동경하는 니르바나.
니르바나는, 나와 닮았다.
“잘난 듯 떠들지 마라.”
뜻밖에도 니르바나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정말로 분노했을 때 녀석은 그런 목소리를 낸다.
“‘죽음’을 모르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죽음 이후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겪을 수는 없다. 그건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는 있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그게 평범한 인간과 너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네놈······!”
니르바나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주먹을 쉽게 잡아챘다.
“그래서 유중혁과 ‘하나’가 되고 싶었던 거냐?”
“······?”
“유중혁과 ‘하나’가 됨으로써, 네 존재를 지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잖아. 그렇지?”
니르바나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환생]은 최상위 성좌의 성흔. 그걸 지우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더 높은 성좌의 권능에 기대는 수밖에 없으니까.”
나를 바라보던 니르바나가 이를 갈며 말했다.
“······너는 내 상상을 초월하는 놈이구나.”
“그런 말 자주 듣지.”
“그만 죽여라. 네 말대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까!”
니르바나의 꺼져가는 눈길에 복수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몇 번이고 되살아날 것이다.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서, 네놈을 죽이고, 최악의 고통을 알려줄 것이다. 마치 네 어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나는 흠칫 놀랐다.
“······어머니를 만났나?”
“아주 훌륭한 어머니더군.”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흔들립니다.]
“굴복시키는 재미가 있는 여자였지. 네놈도 알겠지만, 나는 고결한 정신을 타락시키는 걸 좋아하거든.”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흔들립니다.]
“내 눈앞에서 몸부림치며 살려달라 애원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아주 선명해.”
세상에는 그런 도발이 있다.
그게 도발인 줄 알면서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그런 도발.
어머니가, 그랬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거세게 흔들립니다.]
“하하하! 걸렸구나!”
시야가 흔들리며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다.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가 ‘백팔번뇌 Lv.2’를 발동합니다!]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들더니, 다음 순간 나는 스타디움이 아닌 다른 세계로 내던져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사부, 도망가요!」
「제발, 제발 이 세계를 구해줘.」
「당신은 이 세계를 버리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나는······!」
깊은 한과 원망이 깃든 목소리들.
나는 이 세계가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제4의 벽]이 흔들리며 나타난 장소.
이곳은 번뇌로 들끓는 유중혁의 내면이었다.
“유중혁! 드디어 나를 허락했구나! 그리고······ 역시 네놈도 함께 왔군.”
흉측한 몰골의 니르바나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순간 그런 반격을 준비하다니, 역시 환생자는 환생자다.
“네가 여기에 들어온 것은 실수였다.”
니르바나의 발 밑에 만다라의 문양이 나타났다.
영혼의 내면은 개연성의 영향을 적게 받는 장소.
이곳에서, 니르바나는 자신이 쌓아온 이야기의 힘을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쿠구구구구!
니르바나의 몸집은 순식간에 거인처럼 커졌다.
무수한 이야기를 쌓은 영혼의 중압감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역시, 그만한 이야기를 쌓았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등에는 수백 개의 팔이 날개처럼 자라났고, 다리는 새의 깃털과 뱀의 비늘로 반반씩 덮여 있었다. 주둥이는 늑대처럼 튀어나왔고, 머리 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뿔들이 자라나 있었다.
마치, 이제껏 그가 겪은 모든 환생을 집약한 듯한 모습.
[나는 니르바나 뫼비우스.]
저것이 니르바나의 본신(本身)인 것이다.
[불행한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존재.]
자신만만한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니르바나는 모를 것이다.
나는, 일부러 녀석의 [백팔번뇌]에 당했다는 것을.
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니르바나. ‘환생’의 원리가 뭔지 알아?”
단지 이쪽을 보는 것만으로 공간이 불길하게 떨렸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 영혼은 ‘만다라의 수호자’에게 구속되어 있어서 죽어도 명계로 가지 않아. 대성좌의 고유한 율법에 따라, 현생에서 막 태어난 다른 육체로 반복해서 깃들 뿐이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
“너는 불멸이 아니야. 육신은 다시 태어나도, ‘영혼’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지.”
[헛소리를!]
니르바나의 날개에서 나온 수백 개의 팔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폭포처럼 퍼붓는 천수관음. 현실에서 저것을 맞았다면, 나는 바로 온몸이 터져 죽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다르다.
지금 나는 유중혁에게 빙의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이곳은 나의 ‘내면’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였다.
츠츠츠츠츳!
달려들던 천수관음의 폭포가, 코앞에서 전류를 튀기며 녹아 없어졌다.
당황하는 니르바나의 모습.
나는 내 주변을 감싸는 무수한 페이지들을 보았다.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페이지들이 요란하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페이지 위를 떠도는 글씨들.
내가 읽어온 무수한 텍스트들이 거대한 벽이 되어 주변을 덮고 있었다.
경악한 니르바나가 재빨리 탈출을 시도했으나, 상황은 이미 늦었다.
파츠츠츳!
새파란 스파크와 함께 벽에 부딪친 니르바나의 몸이 녹아내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성좌조차 튕겨낼 수 있는 [제4의 벽].
나는 궁금했다.
어쩌면, 이것을 이용해서 ‘환생자’를 영멸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서 이 벽을 풀어라! 이것은, 이것은 대체······!]
당황한 니르바나가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눈이 멀듯 환한 빛이 벽 위의 문자에서 뿜어져 나왔다.
「세계가 있기에 계속해서 환생하는 것이라면, 이 세계를 지우면 된다.」
[이건······, 설마 이것은······!]
자신의 진실이 적힌 페이지를 보며 니르바나가 경악성을 토했다.
「유중혁이라면 나를 세계의 끝에 데려다 줄 수 있겠지.」
[어, 어떻게 네놈이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것이냐!]
나는 니르바나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세계의 끝까지 가지 않아도 돼.”
벽에 문자들이 떠오를 때마다, 니르바나의 거대한 몸이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갈가리 찢겨 나온 니르바나의 몸이 무수한 문자들로 분리되어, 하나둘 [제4의 벽]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갈갈이 분해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는 니르바나의 얼굴에 낯선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환생자 니르바나는, 수백 년의 방황 끝에 비로소 ‘단 한 번의 삶’에 도달했다.」
벽면에 떠오르는 문자열들을 보며, 니르바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하하하.]
「그는 처음으로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니르바나는 환희에 젖은 표정이었다.
「이것이······ 죽어 간다는 것.」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그 순간, 니르바나는 이것이 자신이 오래도록 기다려 온 순간임을 깨달았다.」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무수한 환생의 끝에 도달한 장소.
오래도록 이 날을 기다려온 고고한 승려처럼, 니르바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가 눈을 감았음에도, 벽면에는 계속해서 니르바나의 내면이 쓰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토록 바라왔던 일인데.」
니르바나의 전신이 자잘한 균열로 뒤덮였다.
발, 다리, 허벅지, 흉부······.
부서진 조각들은 고스란히 [제4의 벽] 속으로 빨려들었다.
「나는 왜,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죽음의 공포.
죽는다는 것. 이후가 없다는 것.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조차 없다는 것.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순간 감겼던 니르바나의 눈이 번뜩 떠졌다.
「싫어... 싫다!」
「그러나 입이 흩어진 니르바나는 그것을 외칠 수 없었다.」
「사라지는 그의 팔이 나를 향해 무기력하게 내뻗어졌다.」
「애초에, 실존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닌 것이다.」
죽음에 달관한 필멸자는 없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
「안돼! 제발! 그만둬! 나를 죽이지 마!」
「그래, 네 어머니의 비밀. 난 그걸 알고 있어! 네 어머니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다고―」
「살려줘. 제발. 나를 살려준다면······!」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최후를 목격하듯이.
「추하게 발버둥치던 니르바나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가장 증오하던 말을 입으로 되뇌었다.」
「죽고 싶지 않아.」
이윽고, 니르바나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졌다.
[‘제4의 벽’이 등장인물 ‘니르바나 뫼비우스’를 포식했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메시지였다.
극장 던전의 보스를 죽였을 때와는 벽이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일순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제4의 벽’이 만족한 듯 웃습니다.]
니르바나를 죽인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제4의 벽]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제4의 벽’이 탐욕스런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벽.
니르바나를 삼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벽이 나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
츠츠츠츳,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 위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 순간, 김독자는 생각했다. ‘언젠가 나 역시 이 [벽]에 먹히는 것은 아닐까.’」
[‘백팔번뇌’가 해제됩니다.]
그리고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벽도, 니르바나도, 유중혁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
숨을 헐떡이며 눈을 깜빡이자, 나는 광화문의 스타디움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앞에서 니르바나가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오랜 방황의 끝에 그는 마침내 안식을 찾은 것이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나는 서서히 유중혁의 발을 움직여 앞으로 걸어갔다.
도깨비가 말하고 있었다.
[이런. 벌써 시나리오의 마지막이 다가왔군요. 이제 최강의 화신이 누구인지 발표해야겠죠?]
피로감 때문인지 발을 한짝 내미는 것만으로 힘이 부쳤다.
도깨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왕왕 울렸다.
[최강의 화신, 그는 바로······.]
그 순간, 의식이 급격하게 흐려지며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마지막 말을 채 듣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졌다.
[정신력이 과도하게 소모되어 ‘전지적 독자 시점 3단계’를 해제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해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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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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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틀 뒤, 나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