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110화 그 말에, 집행부의 도깨비들이 다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얼마간 그러고 있었을까. 두 도깨비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큭. 크하하하핫!] [재미있군. 설마······.] 눈치 빠른 집행자들은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바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수 도깨비 ‘바울’과의 독대를 허락한다.] [자유 독대 시간은 20분이다.] 재미난 볼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집행부는 순순히 내 요청을 허락했다. 이들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 본래 ‘집행부’는 다른 스트리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이야기꾼’보다는 ‘구독좌’에 더 가까운 존재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와 바울의 주변에 작고 투명한 돔이 생겨났다. 본래 ‘독대’는 성좌와 도깨비가 비밀스레 접촉하기 위한 공간. [중급 도깨비 ‘바울’과의 독대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용도라는 것은 사용자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돔의 바깥에서, 비형이 집행자들에게 뭐라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졸지에 나와 단둘이 갇힌 바울이 이를 갈며 적의를 드러냈다.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겁니까? 약이라도 올리고 싶은 모양이죠?” 녀석의 신체에는 여전히 집행자 도깨비들이 씌운 [구속 코드]가 일렁이고 있었다. 저 코드가 있는 한, 바울은 도깨비의 권한은 물론이고 본신의 힘을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즉,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놈은 완전히 무력한 상태라는 뜻이다. “허세 부리지 마.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아니까.” 바울이 주춤거리며 돔의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하지만 녀석의 입가에는, 여전히 나를 깔보는 미소가 붙어 있었다. “하하, 그렇군. 무슨 천박한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군요. 그 노예의 복수를 하고 싶은 모양이죠?” “······.” “우습군요. 천박한 인간의 욕망 따위 모를 줄 알았습니까?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시죠. 어떻게 ‘독대’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서로의 목숨을 해할 수 없는 장소. 당신이 아무리 발악해 봤자······!” 나는 그대로 놈에게 달려가, 있는 힘껏 놈의 면상에 주먹을 처박았다. 푸른 핏줄기가 놈의 코에서 터져 나왔고, 상황파악을 못하던 녀석이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말했다. “죽이진 못해도, 때릴 수는 있어.” “끄어어어억! 네놈이 감히······!” “그래, 이제 본성이 나오네. 안 그래도 그 역겨운 존댓말 듣기 싫었는데.” “크흑, 크허허헉······.” “이런 고통 처음 느껴 보지? 도깨비로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 맞아본 적 없을 거 아냐.” “크, 크흣. 크흐흣······.” 피를 쏟으면서도, 바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네, 네놈은 지금 실수한 거다. 이, 이 공간에는, 네놈처럼 ‘독대’를 악용할 경우를 대비해 특별한 규칙이 걸려 있으니까.”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들려왔다. [당신은 ‘독대 공간’ 안에서 도깨비에게 상해를 입혔습니다.]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도깨비란 놈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녀석들이다. 혹시나 꼭지가 돌아 덤벼들 성좌들을 대비해 이딴 패널티까지 마련해두다니. 코인독이 올라도 어지간히 오른 거지. 하지만 패널티를 알고 있었던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바울이 피를 닦으며 웃었다. “어리석은 인간. 분노 때문에 파멸을 자초하는구나. 그래, 얼마든지 때려봐라. 고작 화신인 네놈이 가진 코인으로는······.”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순간, 바울이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지 않냐? 일개 화신인 내가 어떻게 ‘플래티넘 멤버’가 될 수 있었는지.” 나는 흔들리는 놈의 눈빛을 보며, 씩 웃어주었다. “나 코인 많아. 네놈 덕분에 엄청 벌었거든.” 희게 질려가는 바울을 향해, 조용히 주먹을 꺾었다. 그동안 있었던 빌어먹을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보유 코인 : 205,902C] 나는 죽어가던 신유승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참고로 내가 그녀에게 전한 말들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저 도깨비 새끼, 꼭 죽도록 패줄게. 그러니, 이것은 내가 지킬 첫 번째 약속이다. 뻐어어억!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날린 주먹에, 녀석의 코뼈가 부서졌다. 이것은 누구의 몫이다라든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뻐어어억! 애초에 이것으로는 누구의 몫도 될 수 없으니까.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끄아아악! 하, 하찮은 인간이, 감히······!” 뻐어어억!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내, 내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줄······!” 뻐어어억!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죽인다!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뻐어어억!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자, 잠깐! 잠깐만! 멈추······.” 두려움에 질린 녀석이 몸을 웅크린 순간, 나는 처음으로 주먹을 멈췄다. 한순간 녀석의 눈빛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 그래. 잘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짓을 해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황급히 존댓말을 일삼는 놈을 보며, 나는 물었다. “너는 멈췄어?” “뭣······?” “유승이가 그만두라고 했을 때, 멈췄냐고.” 나는 가만히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한 번 보고, 땅을 한 번 보고. 마지막에는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망의 대상이 있기라도 한 양. “이, 이런 짓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런다고 죽은 네놈의 동료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아!” 죽은 동료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의미는 있어.” 나는 뿔을 떠는 녀석을 향해, 다시 주먹을 들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신유승도 이렇게 했을 거야.” 뻐어어억! 살점이 거칠게 튀며, 놈의 송곳니가 튀어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현성도 그랬을 거고. 유상아도, 이길영도 그랬을 거야.” 놈의 복부에 박힌 내 주먹이 녀석의 내장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마······ 유중혁 그 자식도······.” 돔 밖의 동료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붉어진 눈으로 주먹을 움켜쥔 신유승. 이지혜와 이길영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현성은 진지한 얼굴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고, 유상아는 입술을 꼭 깨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유중혁을 바라보다가, 다시 바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나는 시나리오 바깥의 존재다! 이런 짓으로는 코인을 벌 수 없어! 너한테 아무런 이득도 안 된다고!” 코인······. 그래, 너희 도깨비들은 결국 그런 생각밖엔 하지 못하지. 어떤 이야기는 코인이 되고. 어떤 이야기는 코인이 안 되고. “그럴지도 모르지.” 어떤 성좌도 현상금 시나리오를 걸지 않았고, 어떤 서브 시나리오도 놈을 해치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행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누구도, 내게 이것을 시키지 않았으니까.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으니까 하는 거야.” “뭐, 뭣?” 세계의 멸망이 시작된 이후부터, 코인은 모든 인간들의 행동 원리가 되었다. 성좌들이 코인을 주니까 움직이고, 코인을 주지 않으니까 움직이지 않고. 하지만 인간은 종종,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움직일 때가 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원래 이런 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동물이거든.” “무, 무슨······ 끄아아악!” 나는 다시 주먹을 들어 녀석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뻐어어억! 이어진 주먹질이 놈의 면상을, 늑골을, 관절을, 하나씩 섬세하게 으스러뜨렸다. 죽을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힘의 조절은 없었다. 한 방 한 방이 최선의 타격. 놈의 거죽이 터지고, 뼈가 으깨질 때마다 내 안 깊은 곳에서도 뭔가가 터져 나갔다.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실은 알고 있다.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이렇게 때려도, 이런 것으로는 신유승의 죽음에는 약간의 위안도 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죽은 신유승은, 이 광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주먹을 움직였다. 두들겨 패고, 또 두들겨 팼다. 뻐어어억! 마치 유중혁이 그랬듯이. 아무도 놈의 대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지막 순간까지 녀석이 회귀를 반복했던 것처럼. [패널티로 5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이윽고 허공에서 성좌들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전개에 흥분합니다.] [5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잠시 주먹질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이야기마저, 성좌들에겐 하나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번엔 연기가 아닙니다.” [후원받은 500코인을 반환하였습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크게 당황합니다.] 서비스라고 생각해도 좋다.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행동에 관심을 표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행동에 감격합니다.] 나는 다시 주먹질을 시작했다. 도깨비의 가죽이 터지는 소리와, 간헐적인 신음만이 울려 퍼졌다. 성좌들은 묵묵히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누구도 코인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으, 으으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주십쇼! 제, 제발! 제발!” 견디지 못한 바울이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돔의 가장자리를 두들겼다. 돔의 벽이 허망하게 울렸지만, 집행부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내 기행에 반기기까지 하는 눈치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도 코인 벌이가 되는군.」 「망할 스트리머 새끼들.」 집행부의 도깨비들은 스트리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형(異形)의 존재에서 도깨비로 진화한 집행자들은, 싸움은 잘 하지만 시나리오를 끌어갈 재능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의 몸은 완전히 넝마가 되었다. 나는 피떡이 된 녀석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쯤 됐으면, 슬슬 원하는 걸 물어봐도 되겠지. “신유승의 영혼은 지금 어디 있지?” * 시나리오의 부속으로 죽은 영혼은, 죽어서도 계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계약 자체가 소멸해버린 경우는 다르다. 중급 도깨비 바울이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수십 대를 더 얻어맞은 뒤였다. [그······, 그건. 나, 나도 모릅니다. 다, 당신이 대천사들의 힘을 빌리는 바람에······, 그, 그년과 우리의 계약이 소멸했으니······.] 역시 그랬군. 도깨비들은 악마에게 ‘비스트 로드 신유승’을 넘겨받았고, 이양 과정에서 계약의 끈은 악마들의 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끈은, 우리엘의 [지옥염화]로 모조리 불타버렸다. 즉, 신유승의 영혼은 지금 고정쇠를 잃고 세계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 당신은. 절대로 동료를, 되찾을, 수, 없, 다······ 그년의 영혼은, 이제 곧, 세계선의, 미궁, 속으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울은 쓰러졌다. [‘도깨비 독대’가 종료되었습니다.] 투명한 돔이 사라졌고, 건들대며 다가온 집행부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징계 회부가 되기도 전에 끔찍한 꼴을 당했군.] 그들은 나를 흘끔 바라보더니,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멀어졌다. 황급히 집행부를 따라가는 비형을 보며, 나는 물었다. ‘뒷돈은 줬냐?’ ―당연하지. 근데 너 코인 너무 많이 쓴 거 아냐? ‘아직 많이 남았어.’ 바울은 정확히 124대를 맞고 기절했다. [보유 코인 : 143,902C] 비형이 한숨을 쉬며 나를 일별했다. ―나 관리국 들어가면 당분간 통신은 불가능할 거야. 채널은 열어 놓을 테니까, 그동안 사고 치지 말고 있어. 제발. 신신당부하는 비형을 보며, 나는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했다. 녀석이 없으면, 지금부터 내가 할 일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시나리오 오류로 인해 추가 보상 정산이 지연됩니다.] 메인 시나리오의 관리자가 완전히 자리를 비웠으니, 당분간 시나리오 전개는 조금 정체될 것이다. 그래 봤자 하루 이틀이겠지만, 내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포탈 너머로 사라지는 도깨비들을 올려다보며, 신유승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걱정 마. 너는 죽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이야? ―네가 부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나도 두 번 해봤는데, 생각보다 할 만하거든. 사실 이 방법은, 마지막까지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결국 이 설계대로라면 그녀는 ‘한 번’ 죽어야만 하니까. 그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 하지만 기다려준다면,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반드시 너를 되살려 놓겠어. 이대로 신유승의 영혼이 ‘세계선의 미궁’에 빠져버린다면, 그녀를 다시 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영혼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녀는 반드시 살아날 수 있다. 문제는 그 영혼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나는 유상아를 돌아보았다. “유상아 씨.” “네.” 신유승이 다른 세계선의 영혼이라 해도, 결국 모든 영혼은 ‘저승’을 경유해 이 세계를 벗어난다. 나는 저승과 관계된 몇몇 성좌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있거나, 지금의 나와는 끈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높았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비벼볼 수 있는 녀석도 하나 있었다. “혹시 ‘버려진 미로의 연인’을 불러줄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유상아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의 주변에 희미한 스파크가 튀었다. 일전의 개연성 소모로 인해 직접 강림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아리아드네가 유상아에게 희미하게 깃들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 너희들과 거래를 하고 싶다.” 주변에서 튀는 스파크가 거칠어졌다. 하긴, 마지막이 만남이 안 좋았으니 그럴 법도 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해야만 한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켠 후,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나를 너희들의 명왕(冥王)과 만나게 해줘.” 이제, 두 번째 약속을 지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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